면죄부

지난 99일 동안 삼성그룹 비리의혹을 수사해온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지난 17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사채 발행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진실규명은 여기까지였다. 김용철 변호사가 애초에 제기했던 핵심사항인 비자금이나 정·관계 로비의혹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면죄부만 발급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용두사미, 재벌 봐주기, 예견된 실패, 허무한 99일, 이상한 특검, 전형적인 짜맞추기 수사 등의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특검 수사결과는 ‘진실의 살(殺)처분’”이라고 논평해 눈길을 끌었다. 진실을 밝혀야 할 특검이 도리어 진실을 조류 인플루엔자(AI)에 걸린 닭쯤으로 취급했다는 항변이다.

정치구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목표인 7·4·7공약(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강국)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대선 과정에서 비전과 전략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7·4·7이나 300만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정치적 구호가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로서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것은 다르다”, “올해 6% 성장률 달성도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인즉슨 7·4·7공약은 현실성이 없었지만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세운 정치구호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300만 일자리 창출도 정치적 구호? 문득 드는 의문. 선거는 왜 하는 거지? 그나마 강 장관이 현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에는 찬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우열반과 0교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5일 이른바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자율성을 침해하는 교과부의 29개 지침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부의 지침을 폐지한다? 여기까지만 들으신 분들은 정부가 굉장히 좋은 조치를 취한다고 생각했을 터. 그런데 정작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나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내용이란 게 바로 우열반 편성 허용, 0교시 수업 부활, 사설 모의고사 허용이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번에 폐지한다는 조치 중에는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지침, 교복 선정을 둘러싼 뒷돈거래 금지 지침 등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막 가자는 겁니까?”라는 논평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뉴타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4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강북 부동산값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는 시점에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겠다.” 총선 당시 뉴타운 추가 지정과 확대를 내세운 서울시내 26개 선거구 후보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총선 기간인 지난 3월 28일 뉴타운추가 지정을 약속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 했거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라니! 환경운동과 시민운동 열심히 하던 오 변호사 시절의 초심은 출장이라도 간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