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43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김영식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이 ‘대학경쟁력 강화, 왜 시급한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대학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

“사람들은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따지고 보면 ‘한강의 기적’도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베리 맥고 OECD 교육국장은 ‘지난 60년간 한국 교육의 성과는 질과 양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성과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도 ‘한국 경제의 놀라운 발전을 이끈 일등공신은 제대로 교육받은 국민’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그렇게 놀라운 성과를 거뒀던 한국 교육이 지금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에 작동하던 교육시스템을 가지고는 무한한 창의성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미래사회를 제대로 대비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학이 변하지 않으면 위기에서 못 벗어난다. 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이명박 정부의 ‘대학입시 자율화’ 실행 주체로 주목받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김영식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교육정책총괄과장, 대학교육정책관, 고등교육지원국장, 평생직업교육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까지 지낸 김 사무총장은 성장과 교육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부터 소개했다.

“1953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다.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성과다. 눈부신 ‘한강의 기적’을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다. 1955년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7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52년이 흐른 뒤인 2007년 그 수치는 400만대로 성장했다. 외국에서 생산한 것까지 합치면 500만대가 넘는다. 그것은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성장률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1985~1995년까지만 해도 거의 7~9%의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그런데 2005년부터 4% 수준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피터 드러커 "고도성장 비결은 교육"

김 사무총장은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 속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114년(메이지유신이 일어난 1867년에서 1981년까지), 미국은 128년(산업화가 시작된 1850년에서 1978년까지), 영국은 218년(산업혁명이 시작된 1769년에서 1987년까지)이 걸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얼마나 될까?

“반면에 한국은 국민소득 1만 달러의 경계를 뛰어넘는 데 3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된 1962년에서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5년까지 계산하면 그렇다. ‘33년’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산출된 계산법이 주관적이고 자족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드러커는 2006년 12월 28일 ‘한국은 3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황폐한 제3세계 국가에서 충분히 개발된 세계 수준의 경제국가로 스스로를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논평했다. 드러커는 한국이 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의 변모에 성공한 원인도 분석했는데, ‘교육을 통해 인적자원을 질적으로 혁신’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김 총장은 10년 전 뉴스위크의 보도 기사를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당시 한국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龍)’으로 묘사됐다. 그런데 ‘추락’하는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은 ‘비상’하고 있다. 1996년부터 4년 연속 1, 2등을 차지한 싱가포르와 홍콩의 국가경쟁력이 상징적인 사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02년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대만은 3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은 2005년 17등에 오른 것 외에는 20등과 40등 사이를 전전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장 최근에 속하는 2007년 5월에 발표된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1등 미국, 2등 싱가포르, 3등 홍콩이었다. 동아시아 3국인 중국, 일본, 한국이 각각 15등, 24등, 29등을 차지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년 사이에 14단계나 뛰어올랐다(2005년 29등, 2006년 18등, 2007년 15등). 그런 점에서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 정부, 기업, 개인은 강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디셰의 발언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다.”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12년이나 걸린 것도 한국의 추락하는 국가경쟁력을 상징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격언이 있거니와, 일본(4년), 홍콩(5년), 싱가포르(5년), 아일랜드(8년), 영국(9년), 미국(10년), 프랑스(11년) 등에 비하면 너무 긴 시간이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도 한국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체 국민 중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로 분류된다. 나아가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부른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9%를 넘어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2015년이 되면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54년이다(미국 86년, 이탈리아 74년, 일본 36년). 한국은 26년에 불과한데, 이것은 국가적 재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출산율을 감안할 경우 2070년이 되면 경제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노인인구는 세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판 MIT와 5O프로젝트의 교훈

김 총장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점도 지적했다. 23조원에 이르는 사교육 시장과 영어 관련 사교육 투자비 15조원(GDP의 1.9%)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기 가장 힘든 나라, 미국 유학 한국 학생 10만명 시대(1위 한국, 2위 인도, 3위 중국)와 두뇌유입 세계 4위(1995년)에서 38위(2006년)로의 전락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다. 예컨대 2005년 싱가포르의 대학경쟁력이 7위였을 때 국가경쟁력은 3위였다. 그런데 2007년 대학경쟁력을 1위로 키우자 국가경쟁력이 2위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대학경쟁력 40위, 국가경쟁력 29위에 머물렀다(2007년 기준). 참고로 중국은 대학경쟁력 28위, 국가경쟁력 15위였다. 대학경쟁력에서 중국보다 12위나 뒤처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뉴스위크가 2006년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의 리스트에는 하버드대(1위), 도쿄대(16위), 교토대(29위), 시드니대(50위), 홍콩대(69위), 나고야대(94위) 등이 포함됐지만 한국 대학은 단 한 곳도 들어가지 못했다. ‘대학이 변해야 한국이 산다’는 말이 구호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세계는 대학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고등교육 혁신과 인적자원 경쟁력 강화 전략 등을 제시한 리스본 협약과 볼로냐 선언 등을 김 총장은 예로 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는 대학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김 총장이 제시한 ‘대학경쟁력 강화 10계명’을 들어보자.

“하나-경쟁을 통한 선택과 집중, 즉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10개 대학이 힘을 모아 수퍼대학원프로젝트를 추진한 ‘일본판 MIT’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둘-교수평가체제 구축과 교수직의 유연성 확보가 절실하다. 셋-총장 직선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넷-학제간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홍콩 과학기술대의 ‘5O프로젝트’(Nano, Bio, Information, Environment, CEO 과정 등 알파벳 ‘O'가 들어간 학문 분야 5개를 통합)는 좋은 응용 사례가 될 것이다. 다섯-충분한 대학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다. 여섯-인문학문과 자연과학의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일곱-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여덟-대학 교육의 국제화가 요구된다. 아홉-대학의 학생선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열-국가경쟁력의 원천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김영식 총장의 이력서

▲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 서울대 행정학 석사
▲ 미 피츠버그대 교육학 박사
▲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 교육부 교육정책총괄과장, 대학교육정책관, 고등교육지원국장
▲ 부산시 부교육감
▲ 대전시 부교육감
▲ 교육인적자원부 평생직업교육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
수상: 대통령 표창
저서: <행정학의 기본문제>, <논점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