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3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1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조병선 기업은행 기은경제연구소 소장이 ‘기업의 경영 승계, 문제점과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누구나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와 얼룩말이 만났다면 어떻게 될까? 사자는 얼룩말을 잡아먹기 위해, 얼룩말은 사자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생존이 걸린 상태에서 삶이 최대로 고조되는, 이런 상황을 우리는 ‘몰입’이라고 한다. 만약 몰입하지 못한다면 사자는 굶어죽을 것이고, 얼룩말은 포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몰입-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랜덤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세상에 내놓은 ‘몰입 전도사’ 황농문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연구원으로서 최선의 성과를 올리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만족스런 삶을 살 것인가 고민하다 ‘몰입’에 빠져들게 됐다는 황 교수는 몰입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생산적이고 기분 좋으면서도 성스러운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의 고백

“혼다자동차의 설립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자서전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에서 ‘엔진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엔진이 돌아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세계적인 부자이자 투자전문회사 버크셔를 운영하는 워렌 버핏의 투자 습관에 대해 버크셔의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버핏은 하루 24시간 버크셔에 대해 생각한다.’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한술 더 뜬다. 그는 ‘나는 내가 산 주식이 급등하는 꿈을 자주 꾸곤 했는데, 내가 깨어났을 때 그것이 꿈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열애에 깊이 빠진 연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혼신을 다해 경기에 열중한 끝에 승리한 뒤 희열에 들떠 포효하는 샤라포바와 타이거우즈도 몰입의 전형을 보여준다.”

황 교수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자서전을 읽다가 그들이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뛰어난 지적 재능과 몰입적인 사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로 뉴턴은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우리는 뉴턴의 머리를 가질 순 없지만 몰입적 사고는 따라할 수 있다.

“우리는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뉴턴에 이어 인류에게 지혜의 열쇠를 선물한 아인슈타인도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 그렇다면 몰입적 사고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만의 독점적 소유물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SBS 스페셜팀의 실험에 따르면, 몰입 교육을 받은 중학생 3학년 10명 중 2명이 2박3일만에 뉴턴의 2법칙을 풀어냈다. 창조적 해답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해결이 될 때까지 실패를 감수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몰입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몰입적 사고를 연습하는 것이 마라톤을 배우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몰입을 적용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라이공업의 회사 슬로건은 아예 ‘항상 생각한다’이다. 1만8000여종의 아이디어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미라이공업은 사원들로 하여금 늘 아이디어 쪽지를 제출하도록 한다. 그리고 상사에 대한 욕설이나 급여 불만 등을 제외하고는 어떤 내용이라도 500엔의 상금을 지급한다.

“쪽지를 제출하면 곧바로 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원들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임은 물론이다. 실제로 누구든지 계속 생각을 하다 보면 발상과 열정이 샘솟는다. 재료공학과 교수인 나 자신도 연구를 하면서 몰입 방식을 적용했다가 평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과를 낸 적이 있다. 수십 년 동안 국내외의 석학들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나노 입자 이론의 난제를 몇 달 간의 몰입 체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나는 직접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한 문제에 완전히 미쳐서 몰입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IBM도 전 세계의 지사에 ‘생각하라’는 슬로건을 눈에 띄는 곳마다 붙여 놓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데, △생각할 자료를 찾아서 읽기 △막연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토론하기 △생각할 대상을 관찰하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빌 게이츠가 1년에 두 번 외딴집에서 갖는다는 ‘싱크 위크(Think week)’도 몰입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발간된 IBM 한국보고서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자산’이란 지적재산, 인적자원, 무형자산 등을 말한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가 편찬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2년 당시 미국의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38%였다. 그런데 10년 후에는 그것이 62%로 증가했고, 다시 10년이 흐른 2002년에는 82%까지 상승했다. 참고로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분류되는 GM은 93.3%, MS는 87.5%, IBM은 84.4%, 인텔은 73.8%에 이른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예컨대 국내 상장기업의 무형자산 비율은 평균 33.6%에 불과하다.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삼성전자가 63.8%, LG전자가 58.2% 수준이다. 결국 우리가 믿을 것은 인재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몰입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있을까? 황 교수는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작심삼일(作心三日)’을 권했다. 누구든지 일단 3일이면 ‘초급 몰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첫째 날은 매우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황 교수는 “첫째 날에는 일단 해결이 절실한 문제(화두라 해도 좋다) 하나를 잡어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잡념을 털어내고 되도록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명상을 한다고 여겨도 괜찮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때마다 메모를 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건 필수이다. 둘째 날, 전 날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지루할 땐 천천히 생각하려고 애쓴다.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은 쉬지 않도록 한다. 1시간가량 운동으로 땀을 빼는 것도 좋다. 셋째 날,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는 때가 오면 몰입의 90%에 이른 것이다. 온몸의 힘을 빼고 명상하듯 생각을 밀고 나간다. 그러다 보면, 애초 잡았던 문제를 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이 아이디어는 적어도 사흘 전의 것보다는 ‘개선된 해법’일 것이다.”

적절한 훈련으로 누구나 도달 가능

황 교수는 “몰입 상태에서는 인생의 깊이도 굉장히 깊어지고 성숙해 진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기적과 같은 깨달음이 매일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몰입 상태에서 얻게 된 아이디어는 대부분 우연히 떠올랐다는, 한 순간의 영감을 통해 깨달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영어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른다.

“이상하게도 그런 아이디어는 자는 동안에 떠오른다. 우리가 잠잘 때 기억을 못하다가 낮에 그것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 하나만 자나 깨나 생각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나 깨나 생각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다. 그래서 몰입 상태에 돌입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몰입이란 이 우주에 그 문제와 나 자신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인간이 정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집중 상태를 의미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적절한 훈련에 의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몰입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늘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지환 기자

황농문 교수의 이력서

▲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속공학 석사
▲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속공학 박사
▲ 1986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입사, 물질량표준부 재료평가그룹 선임 및 책임연구원
▲ 미국 국립기술표준원(NIST) 객원연구원
▲ 일본금속재료연구소(NRIM) 객원연구원
상훈: 한국과학총연합회 최우수논문상
저서: <몰입-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