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 현은 일본 수도인 도쿄 남쪽에 있는 인구 850만의 지방자치단체다.

이곳 가나가와 현의 지명을 딴 '가나가와 네트워크'라고 하는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운동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교토, 오사카, 나고야 등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비와'라는 큰 호수가 있다. 1979년 합성세제 및 생활하수 등으로 비와 호의 수질이 급속히 나빠지자, 비와 호의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는 인근 지역의 주부들이 나서서 합성세제 추방운동을 벌였다.

폐식용유를 거두어 세탁용 비누를 만들어 나누어 쓰는 등 적극적인 비와호 환경보호 운동으로 운동 1년 만인 1980년 합성세제를 쓰는 가정이 전년도의 30%로 줄어들었다. 1985년에는 부영양화의 주범 중 하나인 '인'의 유입량도 20년 전인 1965년 수준으로 낮아졌다.

비와 호 환경정화 운동은 인근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도로 시작하였다. 민간주도의 운동이 성과를 거두자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영양화 방지조례' 등 법규정을 만들어 이를 지원하고 체계화하였다.

가나가와 현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주부 회원들은 비와 호의 성공사례를 받아들여 1980년 22만 명의 서명을 받아 가나가와 현의 가와사키, 요코하마 등 7개 시의회에 환경보호를 위한 조례제정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22만 명의 서명이 담긴 생협 주부회원들의 조례제정청구는 관련 시의회 의원들의 무관심과 인식부족으로 제대로 된 심의조차 없이 부결되고 말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생협 회원들은 이제까지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와 방임을 거두고 지방의회에서 주민과 여성, 주부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리인'이 필요함을 깨닫고 지역정치에서의 '대리인 운동'을 시작하기로 한다.

1983년 지방선거에서 생협의 대리인이 처음으로 가와사키 시의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어 1984년 7월 1일 요코하마 항 야마시타 부두 '나가가 마루' 선상에서 정치적 대리인을 선출하여 지방자치에서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를 펴나가기 위한 '가나가와 네트워크(약칭NET)'가 창립되었다.

1987년 지방선거에서 가나가와 현 내의 지방의회에 20인의 '대리인'을 탄생시킨다는 계획으로 기초 자치단체마다 '지역NET'를 만들어 활동한 결과 15명의 지방의회의원 곧 주민과 여성, 주부의 '대리인'을 당선시켰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는 40명의 '대리인'을 당선시키고 국회의원 후보자와는 '정치계약'을 맺어 당선 이후의 정치활동에 일정한 소임을 부여하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의 기본 이념 줄거리는 생활인 정치, 참여형 정치, 참여, 분권, 자치, 공개이다. 주민참여가 없거나 제한되는 지방자치는 자치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본다. 권력의 분권, 주민에 의한 자치, 정치와 행정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 또한 철저한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지역 정치참여는 권력과 명예, 부를 추구하는 정치가 아니다.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과 삶의 현장에서 출발하는 생활인의 정치다. 지역사회의 작은 문제점부터 하나하나 해결해나가고 지역주민의 미래희망을 창출해가는 것을 목표로 할 뿐 중앙권력의 이동이나 지역정치권력에 줄 서기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일본의 선거와 정치는 지반, 간판, 가방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반은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이 세습에 의해 아버지에서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간판은 건설업계, 금융, 운수업 등 업계의 대리인격으로 나서서 정치를 하는 경우, 가방은 돈 가방을 말하는 것으로서 돈 많이 드는 선거와 정치를 뜻한다.

이러한 정치는 일반 주민, 유권자의 혐오를 사고 정치에 흥미를 잃은 유권자를 투표소로 이끌어내기 위해 다시 유명세를 타는 스타급을 후보로 내세우고 돈과 유권자를 더욱 많이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 등 업계의 대리인을 영입하고 조직관리와 가동, 홍보를 위해 더 많은 정치자금이 있어야 하는 주민 무시와 정치부패의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이러한 일본 병적 정치문화를 바꾸어내는 지역정치개혁의 기수 역할을 하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대리인'이 지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될 경우 2기 8년의 임기를 마치는 것으로 '대리인'의 소임을 거두고 새로운 '대리인'으로 교체한다. 나이와 생각을 세대교체하고 권력집착을 끓기 위한 제도인데 지역정치개혁의 지속성에 문제가 되기도 하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운동으로 첫째, 주민에 의한 새로운 공공영역의 확장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같은 NGO나 일하는 사람이 출자하고 경영하는 워커스 콜렉티브(work’s collective) 활동이다.

둘째, 시민사회 챌린지 기금 운동이다. 2000년부터 NET정치자금으로 '시민사회 챌린지 기금'을 설립했다. 기금지원은 ①전국의 지역정당 창당 지원 ②전국의 지역정당이나 NGO에 의한 정책제안 활동 지원 ③가나가와 현의 도전적인 NGO 설립 지원 등이다. 매년 2억엔, 한화로 약 16억 원을 모금하여 기부한다. 1개 단체에 100만 엔씩 지원하고 있다.

셋째, 주민을 통한 평화 네트워크를 넓혀간다. 군비증강이 국가 안전보장과 연관성이 없으며 미군기지로부터의 공해와 사고 등으로부터 안전을 우선한다. 이를 위해 정보의 공개를 철저할 정도로 요구한다. 정보가 없는 시민은 지역정치의 주체가 아닌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보면서 한국의 지방자치, 생활정치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를 말하는 것을 저급한 일로 여기고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따지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딴지걸기나 발목 잡기로 매도하는 사회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치나 지방자치의 현장에서는 아직 비정상이 정상을 압도하고 있다.

국민을, 주민을 무의식 화하여 정치권력쟁취와 행사를 위한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한국사회이고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이다. 특히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주민은 지역의 일부 관변 언론, 행정조직, 관변단체, 사회단체. 정당 정치조직을 통한 고도로 조작된 무의식의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지방자치는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풀뿌리 정치요,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여야 한다. 지방자치발전, 주민 삶의 질 향상, 부정ㆍ부패척결을 통한 갈등해소, 사회통합 등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고 겪어온 정치꾼집단으로부터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처럼 지방자치단체 주민 대다수가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를 갈망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참 일꾼'이 되던가 '대리인'을 내세워야 한다. 지방자치의 주체, 주역은 지역주민 유권자다. 지역사회 주민 유권자가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뜻을 모아야만 한국의 지방자치를 올바로 세울 수 있고 나라를 변화시켜갈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은 세상의 변화를 원하고 정상적인 지방자치를 바란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작은 관심과 노력을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투자할 용기나 생각은 없다. 모두 다 뒤돌아서서 남의 노력과 희생만으로 세상의 변화를 거저 얻으려는 사회는 결코 앞서가는 사회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무책임하고 불분명한 개념일 수도 있는 '우리'가 아닌 '나'로부터 출발한다. 수많은 '변화한 나'가 모여 네트워크를 이루고 지역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켜가는 것이다. /시민의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