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3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3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1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조병선 기업은행 기은경제연구소 소장이 ‘기업의 경영 승계, 문제점과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성공적인 경영 승계는 제2의 창업"

“성공한 CEO가 치러야 할 마지막 시험은 후계자를 얼마나 잘 선택하는 지와 그의 후계자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할 수 있는 지에 관한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다. 이것이 어찌 기업의 경영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 드라마 ‘대왕 세종’의 핵심적 주제도 CEO 태종의 후계자 선택과 권한 이양이 던지는 메시지와 직결돼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영 상태가 지속되도록 소유권(Ownership)과 경영권(Management)을 차세대 경영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경영 승계가 산업계의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승계 컨설팅 사업을 벌여온 조병선 기업은행 기은경제연구소 소장은 이것을 ‘릴레이 경주의 바톤 터치’에 비유했다.

“바톤 터치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바톤을 넘겨주는 시점이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이와 관련 가장 주목되는 것이 한국 기업 창업 세대의 고령화 현상이다. 따지고 보면 고령화는 기업인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통계청의 인구 통계를 보면 국가 전체 차원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CEO의 평균 연령도 가파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1993년 48.2세이던 평균 연령이 2004년 52.7세로 늘어났다. 10년 동안 약 5세나 연장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 인구 비율도 16%대까지 육박했다(1993년 10.6%, 2000년 14.3%, 2004년 15.7%). 산업화 역사가 긴 독일과 일본은 이미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밀레니엄 클럽과 암묵지

조 소장은 경영 승계의 중요성을 선진국의 튼튼한 경제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장수기업(長壽企業)’과 연계지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독일과 일본 같은 선진국의 경우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장수기업이 많다. 예컨대 일본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족기업(家族業業) 형태의 기업이 약 1만5000개나 있다고 한다.

“독일에는 중소기업 중 단독으로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기업이 500~600개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숨은 강자’나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 기업 역시 대부분이 일본처럼 가족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랜 기간 살아남아 번영하는 기업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대대로 훌륭한 CEO들이 나와서 더 나은 성취를 이룬 뒤 다음 대의 CEO에게 물려주는 전통이 바로 그것이다. 창업주와 관련된 가문이 300년 이상 유지하고 성장시킨 기업의 CEO만 멤버가 될 수 있는, 영국 왕실에서 특별히 초대해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영국의 ‘밀레니엄 클럽’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유럽에서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큰 ‘가문의 영광’이 될 정도라고 한다.”

과거의 봉건적 시각으로 보자면 ‘장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일개 기업인 모임의 구성원을 존귀한(?) 영국 왕실이 직접 초청해 격려하는 전통은 왜 생겨났던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하고 실용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영국 왕실은 기업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국민 경제와 서민 생활과 고용 보장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족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영 승계를 하기 전후의 경영 성과를 직접 조사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경영 승계가 잘 이루어진 가족기업은 자기자본 비율은 물론이고 매출액, 영업이익률 분야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반면 부채 비율은 눈에 띠게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소유 형태별 경영 성과를 비교해보면, 가족기업의 매출액 증가율(19.6%)과 이익 증가율(21.1%)이 비가족기업의 매출액 증가율(13.8%)과 이익 증가율(12.6%)을 크게 앞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이 긍정적으로 발휘되면 가문의 번창이 곧 국민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 정신’이란 창의적 발상,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투자활동 등을 의미한다. 이어진 조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주요 나라의 가족기업 비중은 독일 84.0%, 영국 76.0%, 미국 54.5%로 되어 있다. 한국은 68.3%. 미국보다는 높지만 독일과 영국보다는 여전히 낮다. 조 소장은 경영 승계가 국민 경제 기여도와 직결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영 승계는 해당 기업 자체의 운명은 물론이고 그 기업과 이해를 같이 하는 다양한 사람과 조직,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경영 승계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경영자가 고령화되면 적극적인 자세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현상 유지 차원의 안전 경영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투자가 위축되고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 활동이 부진해지고, 기업 가치도 하락하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경영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폐업으로까지 이어지면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초래된다. 당장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론화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생산 설비와 근로자의 작업 과정에 체화돼 있는 ‘암묵지’란 자산이 사장될 수도 있다.”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반복학습과 시행착오 등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의 지식을 뜻한다. 따라서 경영 승계는 개별 기업을 넘어선 국가 전체의 과제이며,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중한 승계 비용, 경영 후계자 육성 미흡이 시급한 과제에 속한다.

“경영 승계를 앞두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승계 비용 가중으로 기업의 영속성 유지와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려면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최고 세율이 50%나 된다. 기업 자산이 200억원이라고 한다면 그 절반 수준인 1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 주식을 50% 이상 소유한 기업인이 경영권까지 포함해 승계할 경우에는 할증료 30%가 부가된다. 심할 때에는 과중한 세금 때문에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후계자 양성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심지어 선진국인 독일과 일본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데, 문을 닫은 일본 기업의 4분의 1이 후계자 양성에 실패했다.”

기업인의 진심어린 솔선수범 필요

그러나 정작 이것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기업의 경영 투명성 결여, 모럴 헤저드(Moral hazard), 부의 대물림이라는 인식 등이 켜켜이 쌓이면서 경영 승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갈수록 부정적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경영 승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 이전에 기업인들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가 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일부 기업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진심으로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도경영과 투명경영의 실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수행 등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경영 승계를 공개하지 못했던 부끄럽고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과 경영 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누가 바꿔줄 것을 기대하기 이전에 스스로 바꾸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성공적인 경영 승계가 곧 제2의 창업이기 때문이다.” /정지환 기자

조병선 소장의 이력서

▲ 건국대 법학과 졸업
▲ 건국대 법학 석사
▲ 연세대 행정학 석사
▲ 독일 쾰른대 법학 박사
▲ 1982년 기업은행 조사부 근무
▲ 기업은행 전략기획팀 팀장
▲ 기업은행 지점장, 조사연구부장
▲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건국대 겸임교수
▲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상훈: 대통령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