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2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9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황진택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상무가 ‘지구온난화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지구온난화가‘청룡열차’처럼 빨라지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2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IPCC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앨 고어는 기상이변과 환경위기를 다룬 기록영화 <불편한 진실>을 제작했으며, IPCC는 인간이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 왔다. 지금까지는 주로 전쟁이나 군축과 관련해 업적을 남긴 사람과 집단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됐다는 점에서 사실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평화’라는 지평이 처음으로 ‘환경’이라는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지구온난화로 상징되는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정도이자 첩경임을 지구촌 사람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화두-기후변화협약>,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가는 길>, <산업계에서 바라본 무역과 환경문제>의 저자인 황진택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상무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참고로 IPCC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이다.

‘대구사과’와 ‘보성녹차’ 사라진다?

“IPCC는 얼마 전에 심각한 기상이변 현황이 담겨진 최종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이변의 발생빈도와 피해규모는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우선 1990년대의 기상이변 발생건수가 40년 전에 비해 4.3배, 경제적 피해규모는 15.2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이변은 더 이상 선진국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2005년 8월 미국의 뉴올리언즈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 자연재앙으로 무려 1300여명이 사망했고, 123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오죽하면 ‘지속가능한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던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의 당시 억지로 서명했고,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당시 빠져버렸던 미국의 입장이 이 사건을 계기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지구온난화를 두고서 간빙기(間氷期)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사인(Sign)과 코사인(Cosign) 커브처럼 순환을 거듭하는 지구의 생애 중 간빙기는 더워지는 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북동쪽에 위치한 그린랜드만 해도 50~70만년 전에는 초원(그린랜드의 원래 의미)이었다는 증거도 제시하면서 말이다.

“일면적으로 맞는 지적이긴 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온난화의 속도에 있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인데, 아무리 간빙기라고 해도 지금까지는 1만년에 1℃의 속도로 원만하게 상승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100년에 1℃의 속도로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쉬운 비유를 들자면, 지구온난화의 속도가 ‘천천히 걷기’에서 ‘청룡열차 타고 달리기’로 바뀐 것이다. 특히 1980년 이후 그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유난히 무더웠던 1998년에 이어서 2002~2006년이 모두 ‘가장 무더운 해’ 톱6에 포함됐을 정도였다. 지구온난화에 가속도(加速度)가 붙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구의 평균 온도는 2020년에는 1℃, 2080년에는 3℃, 2100년에는 최대 6.4℃ 상승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는 필연적으로 해수면 상승이라는 결과를 동반한다.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20세기에 해수면이 17㎝나 상승했다. 우려되는 것은 해수면 상승도 가속도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61년 이후 연평균 1.8㎜, 1993년 이후 연평균 3.1㎜ 상승한 것이다. 현재 380ppm인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영향을 받아 1000ppm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해수면이 상승하면 적지 않은 나라가 수면 아래로 잠기는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투발루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지금 호주와 뉴질랜드로 피신하고 있다. 한편 이산화탄소 농도의 경우에는 지구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550ppm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아울러 지구의 온도가 6.4℃ 상승하면 재앙 수준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맘모스’라는 엄청난 크기의 동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도 결국은 1~2℃의 온도 차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에 인간은 그나마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다. 추워지면 조끼나 가디건을 껴입을 수도 있고, 더워지면 겉옷을 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식물 등 생태계는 적응할 수 없다. 예컨대 수온이 상승하면 난류성 어종인 멸치와 오징어가 북상할 것이고, 그 자리에 있던 한류성 어종인 명태와 정어리는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길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적지 않은 어종이 하나둘 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구 사과’와 ‘보성 녹차’라는 말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산업에도 막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예컨대 과거 부(富)의 상징이었던 밍크코트를 비롯해 겨울 의류는 매출이 감소하고, 스키장 등 레저 산업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명태, 조기, 갈치 등의 어획량 감소는 수산 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고야 말 것이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열대 기후가 육지로도 확산되면서 말라리아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종 질병이 발생할 것이고, 관련 의약 산업도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기후변화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도 제공한다. 북극의 빙하 면적이 감소함에 따라 북극해로 선박이 다닐 수 있게 된 것도 그 중의 하나다. 미국 LA에서 유럽까지 가기 위해 더 이상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황 상무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용어를 동원해 설명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티핑 포인트’”라고 강조한 뒤 “이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자칫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개구리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110V와 220V 동시사용은 어때요?

“선진국의 주식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워터 펀드, 에너지 펀드 등이 주목받고 있다. 환경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겨울 의류보다 여름 의류를, 난방 산업보다 냉방 산업을 해보자는 단순한 차원의 사업에 주목해선 안 된다. 그런 낮은 수준의 발상을 뛰어넘어, 어마어마한 자연과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지혜롭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만 분명하게 가질 수 있다면 기후변화가 제공하는 비즈니스 기회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각종 국제 조약이나 협정 내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예컨대 자동차와 냉장고의 냉매인 CFC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의 흐름을 모른다면 관련 산업에서 손을 떼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럽은 ‘지구를 살리자’는 명분을 내세우며 환경과 에너지 관련 제도 수립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제품내유해물질규제(RoHS),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친환경제품개발법(EuP)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이브리드카를 앞세운 도요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전략적 차원에서 친환경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삼성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우리는 그것을 ‘3S 전략’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3S는 각각 스톱(Stop), 스위치(Switch), 스윙(Swing)을 가리킨다. 우선 지금까지의 모든 사업이나 생각을 일단 정지시켜 놓고 환경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처음부터 검토해 보자는 것이 스톱의 메시지이다. 나아가서 사업이나 생각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꾸되 충분한 사전 연구 기간과 적용 절차를 밟자는 것이 스위치의 메시지이며, 어차피 변화된 상황이라면 절망이나 비관에 빠질 것이 아니라 신나게 즐기는 자세로 위기를 벗어나자는 것이 스윙의 메시지이다. 쉽게 말해 110V에 이어 220V가 생겨나서 두 가지가 공존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에 빠질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어댑터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과거형을 고집하는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기를 발휘하자.”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황진택 상무의 이력서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미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사
▲ 미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 한국외환은행 근무
▲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근무
▲ 세계산업계환경협의회(WBCSD) Liaison Delegate
▲ 환경·에너지관련 정부 자문위원(환경·산자·외교·과기부)
▲ 환경경제학회 감사
▲ 환경정책학회, 실내환경학회 이사
저서: <산업계에서 바라본 무역과 환경문제>, <21세기의 화두-기후변화협약>,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가는 길>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