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오사카까지 5박6일

인천공항에서 도쿄까지는 고작 두 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필자를 포함해 세 명의 신문사 사장과 편집국장은 도쿄와 교토 그리고 오사카까지 재일교포 상공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원경 양은 광주가 고향으로 도쿄 상지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수학하고 있는 당찬 학생이었다. 짬짜미 온천에도 가고, 관광도 하면서 새롭게 느낀 일본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재일동포의 애환을 보면서 짧은 일정의 여행기를 쓴다.

일본에 부는 한류

호텔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신쥬쿠(新宿) 쇼칸도리에 있는 한국인 거리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쇼칸도리에는 1백여 곳의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2003년 한류가 불어오면서 생긴 음식점이 절반을 넘을 만큼 많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상호의 식당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방안이 온통 조인성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옆방은 배용준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4-5십대 중년 여성들은 배용준을 좋아하고, 젊은 여성들은 조인성, 류시원, 송승헌 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여성들은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는데 나중에야 이들 배우들이 이 식당에 다녀갔기 때문에 그녀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인성을 좋아하고 다시 태어나게 되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한 여성은 지금 한국말을 배우고 있고, 한국 드라마를 가장 즐겨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는 일본의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 자막으로 번역되어 방송되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시청한다고 한다.

허준, 대장금, 주몽 등 사극은 물론 여명의 눈동자, 겨울연가 등 한국의 유명 드라마는 대부분 방영되었고, 요즘 방영하고 있는 태왕사신기를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말을 아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1주인 내에 비디오가게에서 빌려 볼 수 있지만 우리말을 모르면 드라마가 끝난 뒤 일본의 케이블 티브이에서 자막으로 번역되어 방영되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속의 한국인 유학생

일본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은 2만 7천여 명으로 그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다. 유학생 가운데는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온 경우와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온 학생 그리고 부잣집 자녀들과 평범한 가정의 자녀 등 여러 부류가 있다.

공부는 딴전으로 놀기에 바쁜 학생들도 없지 않는가하면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물가가 비싸고 특히 집세의 부담이 커서 부잣집 자녀가 아니면 한국에서 보내주는 학비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렵다.

도쿄에서 혼자 사용하는 원룸인 경우 한 달에 8만 앤(6-7십만원)의 월세를 내야하고,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100만 원 이상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생 가운데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일본에 남아 사업을 하거나 한국 음식점을 하는 일명 뉴카마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도 교수가 되거나 기업체의 연구원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았다.

한글로 만든 생활 정보지에는 20대의 한국 여성들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쏟아져 나왔는데 일본 경찰이 관광 비자나 불법으로 입국해서 일본의 술집에 취업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자 유학생들을 술집 종업원으로 유혹하는 광고였다.

일본은 2년제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원이 많은데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갑자기 사치를 하거나 강의를 빼먹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광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확고한 목표가 없이 유학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려주는 사례다.

친절한 그녀 소노 히데꼬

월요일인 12일 도쿄에서 신간선을 타고 교토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사람은 일본인 여성 소노 히데꼬였다.

38세인 그녀는 아직 미혼으로 직업은 배우다. 12세부터 지금까지 26년 동안 배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한국 카톨릭 교회 학생들을 자신의 부모님 집에 홈스테이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친구로 두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 배우와 드라마 촬영은 물론 일본에서 한국인 배우들의 사인회나 행사의 사회를 맡아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교토역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히데꼬는 금각사(金閣寺)로 안내했다.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의 정식 이름은 녹원사(鹿苑寺, 로쿠온지)로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킨카쿠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했다고 한다.

가늘게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와서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한 체 금각사를 나왔다.

금각사에 나온 우리 일행은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신천원(神泉苑)내에 평팔(平八)이라는 일식집에서 일본식 도시락을 먹었다.

연못이 있는 오래된 정원을 바라보며 운치있는 도시락을 먹었지만 음식에 비해 지불한 점심값은 너무 비쌌다. 무려 5천앤(4만원)이나 하는 도시락을 먹었으니까...

점심을 먹고 모토리큐 니조성을 찾았다. 이곳은 1603년 이에야스가 짓기 시작해 1626년 이에미쯔가 완성한 성(城)이다.

당시의 건축 양식과 회화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특히 니노마루 어전(御殿)은 국보로 지정된 건물로 건축면적이 3,300㎡ 방수가 33개로 방마다 벽화와 금장식 등이 있으며 이들 모두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오사카로 가는 쾌속 전차를 타기 위해 다시 쿄토역으로 갔다. 히데꼬는 우리 일행을 안내하면서 금각사와 니조성의 입장료는 물론 전차표까지 끊어주었다.

히데꼬는 두 시간 후에 방송국 일로 행사장의 사회를 보기로 약속되었는데 전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오에도 온천과 밤거리

도쿄에서 전철로 40분 거리에 있는 오오에도 온천은 온천 가까운 곳에 야경이 아름다운 레인보우 브릿지가 있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온천내의 모든 욕탕은 지하 1400m에서 솟아오르는 천연온천이다. 이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탕이 있어서 배낭여행을 온 관광객이 숙소로 즐겨 찾기도 한다.

유명한 발 마사지는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고, 다채로운 공연도 볼 수 있다.

탈의실에서 욕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운을 입어야하는데 탈의실과 욕탕사이에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남녀가 함께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형 휴게실에는 안락의자에서 개인별 모니터로 티브이도 볼 수 있다.

오사카에서 마지막 밤을 맞은 우리는 시내의 밤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중심가에 있는 상점가 안에 있었다. 빠징코의 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집 건너 빠징코 가게가 줄을 지어있었다.

한국인은 셋이 모이면 고스톱을 치고, 일본인은 둘이 만나도 빠징코를 한다고 할 정도로 빠징코 가게는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한참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50세 전후의 아줌마가 다가와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반갑게 대답을 했는데 삐끼였다. 일본에서 놀란 것은 거리에 버젓이 여성 전용 술집이 줄을 지어 있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남자 사진을 수십 장씩 가게 앞에 걸어놓고,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남성들이 갈 수 있는 술집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삐끼가 있는 것을 보고, 일본의 남성들은 여성이 서비스하는 술집에 음성적으로 들어가고, 여성들은 내놓고 남성 호스티스가 있는 술집에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는 어린이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엔 여성 그리고 개가 대접을 받는다고 들었다. 당연히 남성은 개만도 못하다고 자조한다.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던 과거 일본 여성은 없고, 방안을 온통 배용준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여성 전용 술집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일본 여성들. 물론 모든 일본 여성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서너 캔을 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세상이 발전할수록 남자들은 개만도 못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라고 서로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