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23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김수관 POSCO 상무가 ‘윤리경영과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 아니 성공했다”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가 몇이나 되는지 아시오?”
“이(利)가와 해(害)가 단 두 사람입니다.”
“어째서 그러한고?”
“대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한 사람은 이롭고, 나머지 한 사람은 해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어떤 사람인가?”
“소인은 의(義)가입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임상옥이 당대의 세도가와 나눈 이 문답은 ‘이해(利害) 때문에 도리를 저버릴 것인가, 아니면 지킬 것인가’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를 던져 준다. 윤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거니와, 상도(商道)는 ‘윤리경영(倫理經營)’의 고전적 버전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리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이기도 하다.

“'좋은 기업'과 '위대한 기업'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좋은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대한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 포드자동차 이사장 겸 CEO)

그렇다. 세계적인 메가트렌드는 바뀌었다. 세상이 기업에게 요구하는 수준도 달라졌다.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만 제공하면 된다는, 낡은 생각에 안주하는 기업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마쓰시다는 세계 최고의 ‘전기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좋은 사람’을 만드는 회사”라고 역설한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상품과 서비스 이상의 그 무엇,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출발점에 ‘윤리경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김수관 POSCO 상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요타의 빛과 도시바의 그림자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가? 많은 경영자들의 고민이 이 물음에 담겨 있을 것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이미 1963년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 경영>에서 ‘효율(Efficiency)’과 ‘효과(Effectiveness)’라는 두 단어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한 바 있다. 드러커의 설명에 따르면, 효율은 ‘일을 제대로 처리한다(Do the thing right)’를, 효과는 ‘올바른 일을 한다(Do the right thing)’를 의미한다. 전자에는 경영활동 과정에서 안 해도 될 일, 해서는 안 될 일이 포함돼 있어 자원의 낭비가 생긴다. 그러나 후자에는 꼭 할 일만 포함돼 있으므로 자원의 낭비가 생기지 않는다. 전자가 큰 기회보다 당면한 문제 해결에 급급하고 있다면, 후자는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느냐가 관건이다.”

김 상무는 윤리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또 하나의 독특한 사례를 들었다. 윤리경영을 말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 바로 그것이다. “낙서나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결국은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실제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뉴욕시에서 검증된 적이 있다고 한다.

“1994년 뉴욕시는 갈수록 심각해지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깨진 유리창 이론’을 응용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강도, 살인, 방화 등 무거운 범죄보다 노상방뇨, 건물낙서, 무임승차, 고성방가 등 사소한 질서위반 행위를 집중 단속했음에도 4년 사이에 범죄율이 37%나 감소한 것이다. 심지어 살인 사건은 절반이나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근무태만, 자산낭비, 불친절과 같은 조직 내의 사소한 비윤리 행위를 방치하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나쁜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나중에는 치명적인 경영 리스크를 초래하게 된다. 예컨대 직원이 지각 한 번 한 것을 용인하면 잦은 지각 습관이 생기고, 나중에는 무단 조퇴와 결근 현상이 일반화될 수 있다.”

그러면서 김 상무는 1999년 일본 기업 도시바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가 상세히 소개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도시바의 신형 VTR을 구입한 한 고객이 전화로 A/S를 요청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담당 직원이 삐딱한 반응을 보였던 모양이다. 소비자의 취급 부주의로 생긴 하자를 회사에 떠넘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면박을 준 것이다.

“발끈한 고객과 뻣뻣한 직원의 대화는 곧바로 논쟁으로 비화됐고, 그 과정에서 자제력을 잃은 직원이 폭언을 하고 말았다. 흘린 물처럼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직원의 폭언 내용을 녹음한 고객이 그것을 음성파일로 만들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버린 것이다.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했다. 직원의 폭언 내용을 올린 고객의 홈페이지 조회 수가 불과 한 달 만에 200만 회를 넘어선 것이다. 한마디로 일파만파였다. 네티즌들의 집단행동은 도시바 직원의 폭언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제품 불매를 권유하는 운동으로까지 확산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도시바 사장이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한 것은 물론이고 회사 홈페이지에 사죄문까지 게재했다.”

김 상무는 반대의 사례도 소개했다. ‘도요타 방식(Toyota way)’으로 잘 알려진 도요타의 경영철학 중 비즈니스 제1원칙, 즉 “단기적인 재무 목표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장기적인 철학에 기초하여 경영과 관련된 의사를 결정하라”는 담론을 들려준 것이다. 실제로 ‘도요타 방식’에서는 4P(Philosophy, Process, People&Partner, Problem solving)를 강조한다.

“여기서 4P는 각각 장기적인 사고(Philosophy), 낭비 제거(Process), 존중과 도전과 양성(People&Partner), 개선과 학습(Problem solving)을 의미한다. 많은 경영인과 전문가들은 ‘도요타 방식’ 하면 ‘카이센(개선)’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그 맨 밑바닥에는 ‘장기적인 사고’라는 단단한 기초석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도요타의 최대 공헌은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던 제프리 라이커가 오죽하면 이렇게 논평했겠는가. ‘(도요타 사람들의) 메시지는 일관성이 있었다. 회사와 종업원과 고객 그리고 전체 사회를 위한 올바른 일을 행하라. 도요타의 강한 책임의식과 헌신은 모든 다른 원칙의 기초이며, 도요타를 흉내 내려고 시도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자산 규모라는 측면에서 도요타(2873억 달러)는 GM(4357억 달러)의 65% 수준에 불과하다. 직원 수에서도 7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도요타 26만 명, GM 33만 명). 그러나 시가 총액에서는 도요타(2530억 달러)가 GM(209억 달러)을 12배나 앞지른다. 김 상무는 그 불가사의한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윤리경영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황우석과 이종욱, 우리의 역할모델은?

“적어도 일류기업의 비전을 가진 경영자라면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만 독야청청 할 수 있습니까. 남들 하는 대로 우리도 해 봅시다’, ‘회사 상황이 어려우니 협력업체에도 똑같이 분담시킵시다’, ‘모두의 생각이 그러하다니 한번 해 봅시다. 찜찜하기 하지만 다 회사를 위한 건데 뭐’ 등의 타협적 사고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새뮤얼 스마일즈는 <인격론>에서 ‘천재성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인격은 존경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천재성을 지녔지만 화려한 거짓말로 잠시 대중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황우석 교수와, 천재성과 더불어 인격과 정직으로 승부해 오래도록 존경을 받고 있는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중 우리가 역할 모델로 삼을 사람은 누구인가?”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개업하지 않고 피지에서 빈민을 위한 의료봉사, ‘백신의 황제’와 ‘21세기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소아마비 발병률을 낮춘 의료 업적,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소형차, 구내식당, 항공기 2등석을 고집했던 이종욱 사무총장. 국내 최고 기업마저 부패의 수렁에 빠져 있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 자명하다. 다음은 김 상무가 소개한 몇 가지 ‘윤리 선언’이다.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이를 파괴하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워런 버핏) “정직, 이것이 유한의 영원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유일한) “내가 배운 많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정직의 중요성이다.”(빌 게이츠)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김수관 상무의 이력서

▲ 부산대 상대 졸업
▲ 1975년 포스코 입사
▲ 포항공대 대학본부 본부장
▲ 포스코 기업윤리실천사무국 및 감사실 관장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