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노령병단은 노령산맥을 근거로 활동했던 부대로 연대장이나 사령관 등 주요인사는 사변 전부터 강성좌익으로 테러활동을 벌어왔던 사람들이 주로 맡았다.
노령병단은 담양과 장성, 영광을 작전지역으로 광양 백운산 전남도당의 지시를 받아 지서습격 등의 활동을 했으며 사령관은 김병억이었다.

김병억은 장성 북하면 약수리 사람으로 울산김씨라 들었으며 담양에서도 거주해 담양동국민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으며 김00 등 친척들도 많이 있었다.
그는 49년 2월 28일, 월산면 바심재에서 공비출현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이던 경찰 35명중 31인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장본인이기도하다.

난 담양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光州 西中을 나와 광주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무럽 찬탁과 반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본래의 논의는 상실한 채 세력다툼으로만 흘러가는구나’하고 생각했으며 그런 와중에 민청운동 학교대표였던 난 신변의 위험을 느껴 학교와 찬탁운동 모두를 그만 두었다.

이후 경찰이던 전병주 씨가 “좌익하면 큰 일 난다! 좌익하지 않겠다고 말 만 하면 된다!”고 해 그 분 말대로 하고 금융조합에 취직하게 됐다.
금융조합에 취직해 한재에서 근무하다가 50년 4월경 담양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 때는 사람들이 나더러 “월급을 두 번 받는다.”라고 했다. 집에서도 농사를 짓던 터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술집에선 시계를 풀어주며 “이런 곳에서 그만 고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 적도 많다.

사변이 일어나고 7월 28일 인민군이 담양에 입성했고 난 담양군민청에 나가보았다.(민청: 민주주의 청년연맹) 민청에서 조직부장이라는 직함을 받긴 했으나 하는 일이 매일 삐라 만드는 일에다 온갖 궂은일은 다 시켜 너무 힘들었다.
당시 민청은 3층 건물로 현 주부식당 옆 옛 덕인식당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담양군민청 청년위원장엔 ‘미월관’을 운영하던 이00 씨였다.

도당에서 뭐가 내려오면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통에 성격상 맡지 않아 인민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소릴 듣고 가입했다. 가서보니 이곳은 더 있을 곳이 못되는구나 하고 잇몸 아프다는 핑계로 2주 만에 나와 버리고 집에 있으니 보름정도 지나 집으로 소환장이 날라 왔었다. 인공당시 보안대 요즘말로 경찰에서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담양사람 몇몇이 같이 갔는데 교육당시 전체인원은 60명 정도로 정확한 인원을 알 수 없었으며 교육장소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였다.
교육이 끝난 후 배치받은 곳이 보안대 기요계로 경찰서 경무계 같은 곳으로 주로 문서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그런 후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말이 내려오길 “염려마라 우리가 연승하고 있다.”고 했는데 인민군은 싹 철수해버리고 순진하게 그 말만 믿었던 난 시기를 노처 급하게 입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라고 하고 나왔고 산생활은 시작됐다.

일단 혼자서 산을 타고 고개를 넘어 용흥사에서 답동을 거쳐 가마골로 들어 갔다. 당시 담양 외곽 산에는 가라고 해도 안가는 사람, 오라고 했는데 안 온사람 해서 모두 뒤엉켜 숨어 있었으며 전부 뿔뿔이 숨어 있어 수가 얼마나 되는 지 정확히 알 순 없다. 그 사람들이 추월산으로 금성산성으로 해서 가마골로 모여들었는데 어림잡아 2천명은 될 것 같았다. 수복직후 양측 간에 감정이 격해 있어 살려고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막 입산해서 용흥사 산속에 숨어있는데 백양사 가는 방향에 있는 초등학교가 있으니 그 곳으로 모여라고 했다. 가 보았더니 일렬로 줄을 쭉 세우고 인원을 나눠 담양군당경비대를 만들었다. 당시 민청은 너무 위험하기도하고 무섭기도 해 차라리 전투부대로 가는 것이 내 목숨 살리는 데는 더 낳겠다 싶어 경비대(=기동대, 유격대)로 갔다.

별것이 없던 난 “넌 중대장” “넌 소대장” 하던 와중에도 평대원으로 소속됐었다. 그런데 그 곳에 ‘강약방 아들’이 있었다. 난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날 알고 잘 해줬다. 그래서 그랬는지 담양군경비대 참모장을 지냈던 ‘강약방 아들’이 한 일주일 있으니 날 소대장을 시키더니 또 한 달 만에 중대장을 시켰다.

나중에 담양군당경비대는 노령병단으로 편입됐다. 편입 전 담양군당경비대는 40~50명 정도였으며 실제 완전무장은 십 여 명이 전부였다. 담양군당은 지구당으로 전남도당의 예하 조직이었으며 병력은 각 조직으로 나뉘었다. 모든 것은 전남도당의 지시에 움직였고 노령병단 또한 도당의 지시를 받았다. 아무튼 그 때부터 김병억의 노령병단 소속이 됐다.

노령병단은 3개 연대로 이뤄졌다. 6연대 9연대 12연대. 6연대는 장성, 9연대는 담양, 12연대는 영광이었다. 2개 소대가 1개 중대, 2개 중대가 1개 대대, 2개 대대가 1개 연대로 구성됐으며 처음 구성했을 때엔 1개 대대가 80여명 정도로 연락병이나 취사병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인원이 줄기 시작했으며 편재만 있을 뿐 인원이 미달된 데도 많아 나중엔 말이 대대지 7~8명 정도 유지됐었다.

난 6, 9, 12연대에 모두 있었으며 9연대 2대대장으로 있을 때 51년 4~5월까지는 중대 30명씩 대대병력 60명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11사단의 토벌작전 개시이후로는 거의 와해됐다.
처음 6연대 대대장으로 있던 난 담양 9연대로 이근이 됐었다. “상황에 대해 거짓말만하고 있다”는 나의 비판을 들은 여성부원이 신고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9연대로 오게 됐으며 그 때 한달간 사상교육을 받았다.

사상교육을 받은 곳은 가마골에 있는 도당인민학교 분교로 도당인민학교라고 하지만 산골짜기에서 조그마한 텐트치고 ‘당사(黨史)’를 교육받는 것이었다. 학교라고 해서 무슨 건물을 생각하면 안 된다. 비트를 파고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 기본인 사람들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김일성대학 출신이 선생으로 있었고 그 학교는 광양 백운산에 있는 도당본부의 지휘를 받았다. 그 때 선생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동무! 나도 당신만한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데…”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와 난 말하지 않아도 전세에 대해 통하는 것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가마골로 찾아 오셨었다. 하지만 만나지 않았다. 피교육자는 요시찰대상이고 이상한 낌새를 차리면 바로 총살당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웠다. 그만큼 그들은 조직의 균열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강압적으로 끌고나갔었다.

산에 들어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감시하고 배신의 조짐이 보이는 사람은 바로 처형했다. 조직에 가입된 사람이 이탈할 때나 총을 잃어버린 경우, 거짓말을 한 경우, 여자와 관계가 있는 경우엔 모두 총살이었다. 내가 있던 장성에서는 규율이 엄격해서 우리끼리 내부에서도 많이 죽였다.

이 일도 기억난다. 그 때 난 잠깐 담양군당기동대장을 할 때였다. 월산면 광암리 못가 오성리쯤이었다. 장성에서 가마골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으신 아주머니께서 “여보시오 아저씨! 아 글쎄 앞에 가신 분들이 우리집 소를 끌고 갔단 말이요, 좀 찾아 주시오!” 한눈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들어 그 아주머니에게 꼭 찾아드리겠다고 말하고 가마골에 들어가니 벌써 소를 잡아버렸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사업에 반대하거나 조직에 누가 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은 대게 즉결처형됐었다. 서로 간에 감시하는 체제가 이뤄졌었다. 한번은 영광 불갑사를 지나는데 산속에 육탈이 돼 뼈에 옷가지만 걸쳐져 있는 시체들을 보게 됐다. 남자는 흰바지에 고무신, 여자들은 대게 검정치마였다. 피란민들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입산자나 그 가족들이었다. 그 만큼 내부에서도 서로 많이 죽였다. 실제로 우리 같은 전투병들은 국군의 공격에 별로 죽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교련선생이나 배속장교가 인정할 만큼 전투방법을 숙지한 나는 전투 중에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내 직감에 ‘아! 전투란 기싸움이구나’라고.

한번은 4명의 분대로 고지를 빼앗고 그 네 명으로 고지를 사수하는데 1개 중대를 막아낸 적도 있다. 죽을 각오로 싸우니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또 한 번은 장성에 있을 때 연대장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박격포 폭격으로 연대장이 파편에 맞아 피가 흘렀다. 피할 곳을 찾고 있는데 연대장 하는 말이 “귀찮게 뭐 움직이고 그래…그냥 여기서 기다리다 죽게”라고 하면서 버티고 있다가 오히려 국군 척후병 2명을 생포해 무기를 빼앗는 일도 있었다.

산에 있으면서 전투기술이 발달해 주의해야 할 지시사항도 많이 내려왔다. 제일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이 밥 때문에 불 피우는 것이었다. 그것을 조심해야하고 이동할 때도 고지의 초소와 산 아래 병력을 피해 산 중간 능선을 타고 이동했다. 또 조심해야 할 것이 여성동무들과 조심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장성에서 영광으로 다시 함평까지 쫓겨 저녁 8시 경 밥을 먹고 있다 다시 습격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꼬리가 기니 잡힐 때가 다가 온 것이다. 도망쳐서 숨어있는데 밥해주던 늙은 양반이 나보고 “지휘관님 죽지만 않으면 재미있어요잉”라고 말하기에 웃지도 못하고 화내지도 못하고 허탈하게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가마골에 사령관이 있다고 해서 많은 병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김병억 자체가 비트생활을 하고 있는데…그리고 병력이 집결해 있을 수 없다. 폭격이나 포위 작전이 들어오면 한 번에 몰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곡 곳곳에 숨어 있었지 대대적으로 진지를 구축하는 예는 없다.

또 병력들은 대부분 사업이나 지서 습격을 위해 파견나가기 때문에 가마골이라고 해도 1개 중대 정도의 병력만 상주하고 있었다. 또 김병억 주변은 사변 전부터 있던 구빨치산과 이북에서 내려와 파견된 사람같은 측근들만 같이 있었지 봐도 ‘너야 충신돼서 상 받으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하면서 속으로 ‘빨리 전쟁이 끝나 무사히 산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학교 말고도 폭탄공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것은 말 그대로 고장난 지뢰로 뚝딱뚝딱 만들어 사제폭탄 몇 개 만드는 수준이었으며 만들다 오폭으로 사고도 있었다. 또 발동기로 도정기를 돌렸다고 하는데 그 것도 처음 얼마간 한 것이다.

51년 가을에 가마골로 모여들었다 겨울이 되자 조직원들이 아닌 사람들은 많이 이탈됐다. 조직원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조직원이 이탈하려고 하면 바로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자 먹을 것이 없던 사람들은 열병까지 돌아 픽픽 쓰러져 갔고 아는 사람이 옆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약이 없어 도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입산해서 처음 1년간은 마음 놓고 다녔다. 왜냐하면 산에 있던 사람들은 쌍치 복흥 용면 도림리 위쪽 가마골 이쪽 지역을 ‘수복지역’이라고 했다. 가마골에서 대낮에 출발해 반나절이면 장성까지 갔다. 지금으로 말하면 댐 위쪽으로 기도원 있고 전남대 임업연구소 있는 곳인 것 같다. 난 주로 그 쪽에서 활동했다.

장성 북이 북하 삼서 등을 다녔으며 나중엔 신흥에서 고창이나 영광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골짜기에서 주로 활동했다. 매일 움직였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거기에 있다가 영광 백수까지 다녔다. 아무튼 우리는 가마골에서 영광 불갑사까지 계속 움직였다. 이곳에서 지원오라고 하면 가고 저곳으로 가라면 가고. 산에 있던 사람들 말로는 사업이었다. 민가로 내려가 식량을 훔쳐 나오는 일을 하러 가면 우리는 먼저 가 망을 보고 나중에 철수하거나, 지서를 습격하는 일을 했다. 나중엔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한번은 연대장이 담양 정양원을 불 지르고 오라고 지시를 내리기에 일단을 내려갔다. 가서 나뭇가지를 모아놓고 성냥불만 그으면 되는데 ‘불 질러 봐야 이 놈들이 사람들 귀찮게 하고 다시 짓는다고 백성들에게 돈 걷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와버렸다. 귀대해서 연대장이 묻길래 “모조리 죽게 생겼길래 그냥 왔다”고 거짓으로 둘러대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전세가 점점 불리해지고, 내 생각엔 아군끼리 싸운 것이였지 아무 목적 없는 싸움이었다. 1·4후퇴가 시작되자 산 안에서는 떡을 하고 술을 만들고 하면서 모두들 좋아하는데 내가 “또 거짓말 한다”고 해서 무장해제당하고 한 달간 가마골에서 교육 받았다. 그 1·4후퇴가 인민군 잔류병력을 북으로 끌어 올리려고 한 것이었는데 난 그 내막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아무 목적 없는 싸움이 아니었겠는가.

그 무렵 무장해제 당한 채 화순 백아산에 갔다 금성산성 쪽으로 오는 길이었다. 내 앞뒤로 모두 죽었다. 죽음이 항상 내 곁에 엄습해 있었다.
장성에서 이동 중에 다리를 다쳐 고생하고 있는데 소대장 연락병 두 명이 잡혀서 “이젠 꼼짝없이 개죽음 당하겠구나”라고 생각됐다. 자수해서 내려간 병력을 국군은 귀순시켜 ‘부셔라부대’를 만들었다. 우리 내부 사정을 그 사람들이 아니 ‘부셔라부대’를 많이 이용했다.

국군들은 우리 내부사정을 몰랐다. 알 수가 없다 전부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뭘 알고 말고도 없었던 것이다. 사령관은 로봇이었다. 날 체포하러 온 사람들마저 바로 연대장참모와 중대장을 지낸 사람들이었다.

51년 여름이 조금 넘어 쌍치 여시목에 집결해 있을 때 미군 전투기에서 기총소사가 있었다. 비행기 양 날개에서 콩 튀기 듯 “투루루루룩”하고 훑고 지나가면 나뭇가지가 후두둑 다 떨어져 나갔다. 그 때 딱 한명 죽었다. 비행기에서 네이팜탄 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양민 2천명이 학살당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 된다. 2천명이 있을 때도 없고 사람들이 막 입산해서 처음에 잠깐 그 정도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도 없고 보지도 못했다. 국군 전적도 많이 부풀려진 것이 많다. 그들은 우리를 노랑개라고 하고 우리는 경찰들을 검정개라고 했다.

왜냐하면 전과가 커야 보급품이나 화력지원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통계가 거의 부정확하다. 반란군 3~4명 죽으면 10~20명으로 부풀려졌다.
51년 11월 경 쌍치 여시목에서 ‘부셔라부대’의 습격을 받았다. 이종사촌이 등을 총에 맞아 관통상을 입어 고통당하고 있었으나 돕지 못하고 전투에 임하다 도망쳐왔다. 그런 후 산아래 사람과 이야기가 다 끝나 52년 2월 자수하러 가던 차에 연대장참모를 하던 자와 중대장 하던 자에게 체포됐다. 밑에 대리고 있던 예닐곱 명을 대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내가 다리를 다친 통에 그러지 못했다.

그 때 광주만 갈 수 있었다면 부산으로 피난 가 아무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 일제시대 순사들이나 나랑 같이 민청 운동하던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난 갔다 돌아와서 정부 고위 관리까지 하는 걸 보니 기가 차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