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더불어 그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됐던 외국인 근로자 문제나 국민배우자로 불리는 국제결혼여성들에 대한 문제가 우리사회의 민감한 이슈로 자리했다.
최근들어 언론을 필두로 각종 사회단체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국제결혼여성들에 대한 사회문제를 집중 부각시키면서 외국인 근로자와 국제결혼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화되고 있는 추세다.
담양지역도 현재 178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산업현장 일선에서 땀 흘리며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143세대의 다문화가정 역시 지역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때맞춰 지난달 15일부터 25일까지 한국언론재단에서는 ‘한국사회와 이주외국인’이라는 주제의 해외공동기획취재를 기획했다. 본지를 비롯한 전남일보, 영남일보 등 14개 지역언론사가 참가한 이번 해외공동기획취재는 필리핀과 베트남을 방문, 이들 국가의 인력송출기관 및 국제결혼 담당기관 등을 찾아 현지실태를 취재하고 문제점과 대안마련을 위한 개선책을 강구하는데 역점을 두고 10일간에 걸친 현지취재를 실시했다.
본지는 이번 해외공동기획취재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와 국제결혼여성의 눈에 비친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모습을 조망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살펴보기로 했다.(편집자)

Ⅰ. 베트남근로자의 눈에 비친 한국

▲ 담양의 한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청년 바오 토. 다낭에서 대학을 다니다 한국으로 돈 벌러온 바오토는 좋아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또래의 한국 청년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5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2002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화동.
추모제 예정시각인 5시가 다가오자 빈들교회의 좁은 예배당은 추모객들로 북적거린다.
각양각색의 외국인근로자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그리고 대화동 주민들까지 교회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날은 지난 2000년 10월 26일 대전광역시 대화동공단에 소재한 D염색회사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베트남 처녀 ‘응아(당시 22세)’씨가 사귀던 한국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조촐한 추모대 앞에는 생전의 아리따운 모습을 담은 ‘응아’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숙연한 분위기속에 추모시가 낭송되고 이어 추모객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추모의 노래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과 마주 선 곳은 힘겨운 이주노동의 현장,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두 손 모아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 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기를.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 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자국마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러운 기억마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참회하는 노래 ‘미안해요 베트남’을 개사한 곡이다.
30여년 전 한국은 아무런 원한도 없고 싸울 이유도 없는 베트남 땅에서 양민을 죽이고 마을을 짓밟는 비극을 만들었다. 피의 대가는 미국에 의해 현금으로 지불됐고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일은 점차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지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비극의 잔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들이 가난을 벗어나려고 한국 땅을 찾고 있다. 여느 외국인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한국에서 3D업종에 근무하면서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응아’의 고향은 호치민시 구찌현 타이미사미카인아‘에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길 양옆으로 끝없는 푸른 논이 펼쳐져 있고 저녁햇살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응아’란 이름은 베트남어로 쓰면 ‘Nga'인데 ’고니‘란 뜻이 담겨있는 예쁜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여자 중에는 ‘Nga'란 이름이 많다.

베트남 처녀 ‘응아’가 세상을 뜬지도 어언 7년, 하얀 새처럼 어머니 품속으로 날아간 베트남 여성근로자 ‘응아’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갔지만 ‘응아’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응아’는 여전히 코리안드림을 좇아 한국을 찾고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담양에는 베트남 출신 근로자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지금 담양에서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출신 근로자들을 쉽게 찾기 어렵다.
이곳은 담양군 무정면에 자리한 A산업. 20여명의 내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5명의 베트남 근로자들이 바쁜 일손을 움직이며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 가운데 ‘바오 토’란 이름을 가진 청년이 있다. ‘바오 토’의 올해 나이는 24살. 고향은 호치민과 하노이의 중간지점에 자리한 광하이다. ‘바오 토’는 광하이 옆 도시인 ‘다낭’에서 대학교 1학년까지 다녔으며 전기와 전자관련 자격증도 갖고 있다.

‘바오 토’의 가족은 고향에서 경찰서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커피공장에서 일하는 형이 전부다.
“한국에서 돈은 많이 벌지만 가족들이 보고 싶어 울적해질 때가 많다는 ‘바오 토’는 그래도 열심히 돈 벌어서 베트남에 돌아가 대학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털어놓는다.

비록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바오 토’의 생각이나 좋아하는 것은 또래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일요일이나 쉬는 날에는 어김없이 광주에 있는 교회를 찾아 베트남 근로자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맥주도 마신다.

‘바오 토’가 한 달 동안 일해서 버는 돈은 90만원 정도. 이 돈이면 베트남에서 일하는 또래 근로자들의 임금 10～15배에 달하는 큰 돈이다. 그렇지만 ‘바오 토’는 한국에 오기 위해 8000달러를 융자받았다. 이 빚을 갚으려면 1년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하지만 ‘바오 토’는 제법 느긋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적게는 1만달러에서 많게는 1만5천달러까지 쓰는데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돈을 적게 쓰고 왔다는 것이다.

‘바오 토’와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베트남 청년들이 그러하듯 월급의 대부분은 고향으로 송금한다. “한달에 15,000원권 전화카드 두장이면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바오 토’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잘해줘 재미있다”며 서툰 한국말로 “한국 좋아요, 한국 재미있어요”라고 답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한국 이주근로자 가족들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취재진은 호치민시 외곽에 새로 건설된 아파트에 사는 트리 씨 가정을 방문했다. 트리 씨는 9년 전인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건너갔다 아직까지 한국에 머물고 있는 마이(37) 씨의 남동생이다. 마이 씨는 충북 옥천에서 섬유공장에 다니다 방글라데시인인 지금의 남편 까말을 만나 결혼했다.

마이의 남동생인 트리 씨는 태권도 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인 2단의 자격으로 태권도 선수를 지낸 바 있으며 지금은 호치민에서 서점을 운영 중이다. 가족은 부인과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누나인 마이 씨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집에 큰 일이 있을 때 돈을 보내주곤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당뇨와 간암으로 고생하셨는데 그 많은 병원비를 거의 마이 씨가 번 돈으로 충당했다.
트리 씨의 아버지는 태권도 도장을 차려 사범으로 활동했는데 월남 전 당시 참전한 한국군대로부터 태권도를 배웠다고 한다. 트리 씨는 태권도 선수 시절 국기원으로 훈련을 받으러 가기 위해 딱 한번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트리 씨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 중 하나가 2006년 창원사람과 결혼한데 이어 그 사촌 여동생의 사촌이 또 2007년에 대전으로 시집을 갔다”며 한국과의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면서 “누나인 마이도 항상 입버릇처럼 한국이 무척 좋고 식구들 모두 한국에서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트리 씨는 또 “마이가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트리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자신도 역시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며 “몇 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에 갈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풀하우스’ 등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트리 씨 가족은 딸이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언제라도 결혼시키겠다고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 한국 이주 베트남근로자 마이 씨 동생인 트리 씨 가족과 함께. 트리 씨는 한국과의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며 자신도 언젠가는 한국에 가기위해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호치민을 떠나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도착한 이튿날 취재진은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는 ‘푸토(Phutho county)’를 찾아 한국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귀국한 ‘짱’ 가족을 만났다.

‘짱’은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갔다가 2년만에 작업장을 이탈, 2005년까지 불법체류자로 머물렀다. 당시 한국에서 같은 처지에 있던 부인 평타우(한국이름 영미, 29)를 만나 6년간 사귀었다.

평타우는 당시 세탁공장을 다녔는데 같이 일하던 한국 사람이 신고해서 강제 추방당하자 ‘짱’도 2년 뒤 자진 귀국했다.

귀국 후 ‘짱’은 평타우를 찾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 지금은 동생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서 하루 4만동(2.5$)을 받고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월급 20만원 준다고 일하러 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달에 100만원 넘게 벌었는데 20만원이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짱’의 아버지는 “아들이 한국 간다고 했을 때 처음엔 꺼렸다. 하지만 한국은 잘 사는 나라니까 더 많은 것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보냈다”며 “동네 사람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짱을 부러워하고 너도나도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한국으로 가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낸다”고 말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짱’과 부인 ‘평타우’는 “한국에 가고 싶다. 같이 일하던 친구,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고 싶다. 하지만 일하러 가기는 싫고 관광하러 가고 싶다”고 답했다.(다음호에 계속)

▲ 귀환근로자 '짱'의 가족.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짱'과 아들, 부인 평타우, 짱의 동생, 삼촌, 어머니, 아버지
/ 한명석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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