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한다고 미국 51번째 주가 되진 않아”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00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계화시대, 아시아와 한반도의 미래 그리고 한국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냉전체제는 이미 무너졌고,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 ‘이념’이 아닌 ‘실용’을 선택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유일한 하나의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세계화’라는 현상밖에 없다. 세계화는 국가 간의 장벽이 없어지고 물자, 사람, 서비스,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소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결국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여러 가지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는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의 생활수준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세계화가 가져올 낙관적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밝히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1500회 강사의 주인공이 된 한 총리에게 주어진 연제(演題)는 ‘세계화시대, 아시아와 한반도의 미래 그리고 한국의 과제’. 그는 우선 아시아와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이 될 것이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아시아의 비중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1980년 20%에 머물렀던 비중이 2020년이 되면 45%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지역의 또 하나의 특징은 상호의존성이 높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 간의 교역이 52%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역내 거래 43%보다 높은 것이다. 다양성과 역동성도 빼놓을 수 없다. 아시아 지역에는 절대 빈곤국에서 선진국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과거에는 이것이 통합이나 발전에 방해가 될 거라고 봤지만 지금은 오히려 역동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역동적이고 상호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한 총리는 “세계화시대에는 ‘세계화’를 활용하는 것이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것은 자신이 주도한 한미FTA 협상의 정당성에 대한 우회적 강조인 셈이었다. 실제로 그는 곧바로 한미FTA 반대론자들을 향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개방이나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거나 EU와의 FTA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미국과 FTA를 한 나라 중에서 그 어느 나라도 미국에 종속된 예를 나는 보지 못했다. 한국은 과거 5천년 동안 중화사상을 갖고 있는 중국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특한 문화와 체제를 유지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국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민족의식이 깨어 있었다. 따라서 한미FTA를 추진한다고 한국의 모든 제도가 미국화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졸속비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화시대에 세계화를 잘 활용해서 성공한 나라들’을 열거했다. 1960년대부터 날기 시작한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4마리 용(龍), 각각 1979년과 1991년부터 그들을 따르기 시작한 중국과 인도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 총리는 이어서 북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도 아시아 국가의 일원인 한국이 해야 할 의무라고 밝혔다.

“북한 문제도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것이 북한과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의 문제, 세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문제는 분명하다.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광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외부로부터 무력을 사용한 합병이나 공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제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북핵 문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핵이라는 것은 혼자 가졌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주변의 모든 나라가 가지게 되면 사실상 무기로서의 효력을 상실한다. 지금처럼 핵 보유의 가치가 가장 높을 때 개혁과 개방으로 나오는 것이 북한에게도 유리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연 말미에 한 총리는 이렇게 자문한 뒤 “정답은 한국의 생산성을 전체적인 부분에서 높이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세계화는 무한경쟁을 의미하는데, 한국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생산성이 높은 경제체제, 사회체제, 국가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지금 ‘쌍두마차’가 필요하다. 하나는 교육과 사람에 대한 투자이고, 또 하나는 소외계층을 국가와 사회가 체제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이다. 소외계층은 세계화 과정의 필연적 산물인데,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규모가 OECD 30개 국가 중 꼴찌라는 성적이 말해주듯이 과거에는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또 복지타령이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2030년까지 공공복지를 OECD 평균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자 정도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한덕수 총리의 이력서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미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 제8회 행정고시 합격
▲ 특허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경제수석비서관
▲ 산업연구원 원장
▲ 국무조정실장
▲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상훈: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